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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 건너 마을에는

간도의 삶과 그 이야기

두만강 건너 간도(間島)는 조선 말부터 핍박과 가난을 벗어나기 위해 고향을 떠난 우리 농민들의 새로운 삶의 터전이자 일제 강점기 항일 투쟁의 본거지였다. 이 책은 강경애가 간도를 배경으로 1932년부터 1934년까지 발표한 5편의 짧은 수필들, 즉 1932년 8월 《동광》의 『간도를 등지면서, 간도야 잘 있거라』, 1933년 4월 23일 《동아일보》의 『간도의 봄』, 1933년 12월 《신동아》의 『이역의 달밤』, 1934년 5월 8일 《조선중앙일보》』의 『간도』, 1934년 7월 《신동아》의 『두만강 예찬』을 선정하였다. 그러나 저자의 펜 끝에서 전해오는 그 내용은 전혀 가볍지 않다. 그의 수필 속에서 우리는 간도의 자연경관 및 곤궁한 생활상뿐만 아니라 당시 만주를 거쳐 대륙을 침탈하려는 일본 군국주..
두만강 건너 간도(間島)는 조선 말부터 핍박과 가난을 벗어나기 위해 고향을 떠난 우리 농민들의 새로운 삶의 터전이자 일제 강점기 항일 투쟁의 본거지였다.

이 책은 강경애가 간도를 배경으로 1932년부터 1934년까지 발표한 5편의 짧은 수필들, 즉 1932년 8월 《동광》의 『간도를 등지면서, 간도야 잘 있거라』, 1933년 4월 23일 《동아일보》의 『간도의 봄』, 1933년 12월 《신동아》의 『이역의 달밤』, 1934년 5월 8일 《조선중앙일보》』의 『간도』, 1934년 7월 《신동아》의 『두만강 예찬』을 선정하였다. 그러나 저자의 펜 끝에서 전해오는 그 내용은 전혀 가볍지 않다. 그의 수필 속에서 우리는 간도의 자연경관 및 곤궁한 생활상뿐만 아니라 당시 만주를 거쳐 대륙을 침탈하려는 일본 군국주의의 모습을 엿볼 수 있다.

이 책은 띄어쓰기와 몇 군데 오기(誤記)만을 수정하여 저자의 생각과 표현이 오늘날 독자들에게 그대로 전달될 수 있도록 원문을 유지하였다. 추가로 원문에서 따로 설명이 필요한 부분은 독자들의 이해를 돕기 위해 각주로 부연하였다.
황해도 송화출신. 어릴 때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어머니의 재혼으로 일곱 살에 장연(長淵)으로 이주하였다. 1925년 형부의 도움으로 평양 숭의여학교에 입학하여 공부했으나 중퇴하고, 서울 동덕여학교에 편입하여 약 1년간 수학하였다. 이 무렵 그녀의 문학적인 재질을 높이 평가한 양주동(梁柱東)과 사귀었으나 곧 헤어졌다.1931년 장 하일(張河一)과 결혼하여 간도(間島)에 살면서 작품활동을 계속했다. 한때 조선일보 간도지국장을 역임하기도 했다. 1942년 건강 악화로 간도에서 귀국하여 요양하던 중 이듬해 1943년 생을 마감하였다.

출처: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강경애(姜敬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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